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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르네 마그리트와 함께 돌아보는 초현실주의 사조
Seoul, Korea

  

 

어렸던 시절, 미술 수업은 어렵거나 재미없는 지루한 시간이었다. 어떤 화가의 어떤 그림이 얼마나 대단한 예술성을 담고 있다더라는 선생님의 말씀과, 내가 정성과 노력을 쏟아 만들어내는 폐기물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피카소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복잡하게 창조해낸 <모나리자>도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라도 그릴 수 있을 듯 툭 그린 파이프 하나. 그리고 그 파이프 밑에는 "Ceci n'est pas une pipe.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이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와의 첫 만남이었다.

 

 

르네 마그리트는 1898년 11월 21일 벨기에에서 태어난 화가로, 미래주의와 입체주의 성향의 작품을 그리다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와의 만남 후 초현실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장 콕토,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이들도 있지만, 마그리트의 작품에 집중하게 되는 이유는 하나, 개성 때문이다. 대상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다른 방식으로 배치하는 등 그는 스스로의 작품을 마그리트 답게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는 특별전, 《Inside Margritte》가 9월 13일까지 안녕 인사동 '인사센트럴뮤지엄'에서 열린다.

 

 

철학자의 생각을 품은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 사조의 거장으로, 친숙하고 평범한 일상을 예기치 않은 환경 속에 배치해낸다. 이는 우리 안의 상식을 위협하고, 사고의 일탈을 유도한다. 그는 언어보다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작품을 감상하는 데 있어 복제품 또한 원작과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믿었고, 특별한 해석보다는 자유롭게 시처럼 읽히길 원했다. 그의 바람은 인사센트럴뮤지엄을 통해 실현되었다. 전시의 첫 공간, 르네 마그리트의 예술세계와 작품을 다룬 뤽 드 회쉬 감독의 영화 <마그리트, 또는 사물의 교훈(Margritte, or the Lesson of Things)>가 상영되는 공간을 지나고 나면, 마그리트의 생이를 다룬 연대기가 보인다.

 

 

 

입체 미래주의에서 암흑기까지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 후, 벨기에 샤를루아를 떠나 브뤼셀 예술 아카데미에 진학했던 그는 드로잉과 회화를 배우며 당시 사조였던 미래주의와 입체주의에 입문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에 곧 흥미를 잃었고 다다이즘에 관심을 가졌으나 어떻게 그릴것인가보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더 몰두하게 된다. 추상예술에서 벗어나 현실에 보이는 일상의 디테일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추후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보이는 새, 손, 커튼 등이 처음으로 작품에서 등장하는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이후 그는 무거운 분위기의 기이한 도형 등이 배경이 되는 암흑기를 거쳤다. 손, 체스, 말, 나무, 종, 커튼 등을 소재로 삼아 고유한 틀을 벗어난 일상의 재해석을 시도했다.

 

 

 

파리에서 In Paris

 

이후 마그리트는 브뤼셀을 떠나 아내인 조르제트(Georgette)와 함께 파리로 거처를 옮긴다. 그곳에서 그는 프랑스 초현실주의 그룹과 만나 교류하게 된다. 마그리트는 일상의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며 아파트 내부에서 영감을 받아 100여 점의 작품을 제작했다. 거울, 양초, 사과, 레몬 같은 뻔하고 흔한 물건을 낯선 환경에 놓는 마그리트의 대표적인 작업 방식이 이 시기에 탄생한 것이다. 이때 대표작인 <이미지의 배반(La Trashion des Image)>과 <연인들(the Lovers)>이 그려졌다.

 

 

친화력 The Elective Affinities

 

1930년, 대공황을 맞아 파리의 경제 상황은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마그리트와 함께했던 갤러리들의 사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브뤼셀로 다시 돌아온 그는 작은 집을 구했고, 남동생의 도움으로 창립한 광고대행사 스

 

 

 

마그리트의 헌신 The Consecration of Magritte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마그리트는 이전의 회화 스타일로 회귀를 택한다. 1950년까지 자신의 조국인 벨기에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던 마그리트에게, 미국 진출로의 기회가 열렸던 당시는 무척 중요했던 때였다. 그리고 그는 달콤한 성공을 맛본다. 성공적인 전시로 인지도가 오르며 재정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들어 광고 일을 모두 그만두고 미술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빛의 제국 The Empire of Light

 

<빛의 제국> 시리즈는 하나의 이미지 안에 대조적인 낮과 밤을 동시에 담아내 조화시킨 연작이다. 그림의 위는 뭉게구름이 자욱한 맑은 낮이지만 아래에는 어둠이 성난 채 잔뜩 끼어 있는 집이 숲에 둘러싸여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국내 크로스디자인 연구팀에서 제작한 영상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미스터리 룸 Mystery Room

 

마그리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금지된 재현>은 꽤 이상하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와 마그리트 같은 아방가르드 작가를 애호했던 에드워드 제임스(Edward James)가 1937년 마그리트에게 초상화를 의뢰했고, 그렇게 나오게 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관객에게 뒷모습을 보인 채 거울을 바라보는 남자, 그러나 거울을 통해 보이는 남자의 얼굴은 역시 뒷모습이다. 이 아이러니함을 관객들은 거울 속 비친 자신의 뒷모습을 보며 체험할 수 있다.

 

 

 

플레이 마그리트 Play Magritte

 

플레이 마그리트 존은 국내 크로스디자인 연구소에서 제작한 증강현실(AR) 포토존을 통해 작품을 자신의 몸으로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이번 전시의 대표적인 '포토존' 중 하나로 작품을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인사이드 마그리트 Inside Magritte

 

'메인 영상 룸'에 들어서면, 관람객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르네 마그리트가 남긴 회화 초기작부터 마지막 시기까지 약 12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을 새로운 시각효과와 클래식 음악을 통해 새롭게 재탄생시킨 것이다. 마그리트 특유의 부드러운 색채는 현대적인 감각을 입어 관람객을 360도로 에워싸 압도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Magritte's Surrealism

 

작가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시작된 프랑스 초현실주의 사조, 마그리트가 이끌었던 벨기에 초현실주의 사조의 예술적 특성을 비교해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마그리트가 깊이 고민했던 사물과 언어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찰과 대표적인 초현실주의자들인 막스 에른스트,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에 대한 설명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청취실 The Listening Room

 

마지막 공간인 체험존에 나가기 전, 만날 수 있는 작품은 <청취실(the Listening Room)>을 대형으로 재현한 것이다. 마그리트의 작품이 그렇듯, 익숙한 공간에 놓인 익숙한 물건 속에서 우리는 낯섦을 강하게 느낀다. 익숙하지 않은 사과의 크기, 익숙하지 않은 공간의 배치는 오히려 관람객에게 무언지 모를 불안함을 선사한다.

 

 

이찬우 기자
ixd.culee@gmail.com
르네 마그리트 특별전
Location: 인사 센트럴 뮤지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