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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웨어

당신의 매끼 식사를 책임지는

 

“식사하셨어요?”부터 “밥은 먹고 다니냐,” 또 “밥 한 번 먹자.”는 말까지. 한국어 화자에게 ‘밥’은 상대의 안녕을 묻고 기약하는 하나의 인사가 된다. 밥과 음식을 우리는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야 흔하다. 동네 허름한 백반 집부터 그럴 듯한 인테리어의 레스토랑,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는 패스트 푸드점까지. 요즘은 멀리 나가지 않고도 다 배달이 된다. 그러나 일상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밥’과 쉽게 만나게 해주는 곳은 바로 주방일 것이다. 주방만 있다고 밥이 만들어지나, 아니다. 불이 있어야 하고, 음식을 만들고 먹을 수 있게 돕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바로 키친웨어(Kitchenware) 말이다.

 

 

 

키친웨어는 좁게 보면 나이프, 포크, 스푼, 팬과 냄비 등을 뜻하지만, 넓게 보면 주방에서 쓰이는 조리도구와 식사 도구의 총칭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최초의 키친웨어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 오브제의 시작은 최초의 요리에 맞닿아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지난 2004년에는 약 79만년 전의 아슐기 유적에서 인류가 불을 사용해 요리를 한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이때 사용된 화덕, 혹은 막 조리되어 뜨거운 요리를 꺼내기 위해 사용된 도구들이 바로 일종의 ‘키친웨어’였을 것이다. 요리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키친웨어의 역사이다 보니, 키친웨어의 역사는 자연스레 주방의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고대에는 땅에 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붙였고, 그곳이 바로 주방이 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불 위에 금속 가마솥을 매달아 조리를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요리에 필연적이었던 문제인 그을음과 연기는 16세기에 굴뚝이 생겨나며 해결되었다. 주방의 디자인, 또 조리도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스토브(Stove)’의 발명이었다. 1735년 프랑스 디자이너 Francois Cuvilliés의 발명은 요리에 투여되는 노동과 드는 시간을 혁신적으로 줄여주었다

 

 

 

스토브의 도입으로 인해 프라이팬과 냄비는 현대적인 모습, 즉 평평한 바닥과 손잡이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주철, 구리 등이 당시 프라이팬을 만드는 주재료였으며, 현대로 와서 이는 대부분 알루미늄, 스테인리스강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포크와 나이프, 스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나이프와 스푼의 등장은 음식을 먹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으므로, 상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지만, 포크는 꽤 이질적인 면이 있다. 실제로 포크는 이 세 가지 커틀러리(Cutlery) 중 가장 나중에 등장한 것이다. 15세기 중엽까지는 포크로 찍을 음식 자체가 없었다. 농노들이 먹을 것이라고는 묽은 죽과 빵이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소수의 이탈리아 귀족들이 비싼 옷을 더럽히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고, 그게 바로 포크였던 것이다. 그러나 ‘신이 주신 음식을 손 이외의 도구로 먹는 것은 불경’이라는 종교적 이유가 더해져, 이것이 테이블 위에 일상적으로 놓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주방도구의 발전, 식사도구의 발전은 곧 요리의 발전이었다. 키친웨어가 없더라도, 일정 수준의 ‘요리’는 분명 가능했을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든 허기를 채우며 살아 왔으리라. 그러나 요리가 단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이제 인간의 혀를 매혹하고, 또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키친웨어의 눈부신 발전 덕에 가능했다. 믹서기와 에어프라이어, 전자레인지와 식기세척기까지. 칼럼니스트 Bee Wilson은 그의 저서 [Consider the Fork]에서 궁극적으로 포크의 발전 덕에 요리의 발달이 가능했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우리가 한 시점에 소유한 도구들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반드시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고 삶을 더 편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명이 있는만큼 암도 있다. 많은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주방도구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 이후의 여성들이 요리를 포함해 가사에 드는 시간이 늘 일정하다는 역설을 이야기한다. 요즘의 예를 들자면, 에어프라이어의 등장은 예전 같으면 밖에서 사먹었을 튀김류의 음식을 집에서도 만들게 했다. 이는 결국 에어프라이어를 위해 재료를 사고, 음식을 만들고, 이를 정리하는 시간이 들기
때문에 도구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요리에 드는 시간이 줄지는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어쩌면 키친웨어의 역사는 이렇게, 요리의 역사에 비해 대단하지는 않아 보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의의
는 있다. 키친웨어가 없는 삶이란 정말 원시의 그것과 다를 게 없을 것이므로. 팬이나 냄비가 없다면 사람들은 동물을 불 구덩이에 구워 맨 손으로 뜯어 먹어야 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키친웨어는 우리에게 좀 더 위생적인 식사와 다양한 요리를 선물해 주었다. 오늘 먹는 저녁에는 당신 앞에 놓인 도구들이 무엇인지, 얼마나 소중한지 느껴보자. 우리에게 매끼의 식사를 선물해주는 오브제, 키친웨어다.
 

이찬우 기자
ixd.cu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