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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두려움을 극복한 매혹의 색

Ⓒ Norm Architects - Cutlery in Black

 

블랙

두려움을 극복한 매혹의 색

 

해가 지고 나면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몰려온다. 빛의 부재로 인해 만물은 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하는 고유의 파장을 잃고 검게 물든다. 문명 초기일수록 밤은 위험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밤이면 주변이 어두워져서 활동을 할 수가 없었고, 낮보다 기온이 떨어지는 데다가 하루 중 포식자들의 먹잇감이 되기 가장 쉬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밤이 우리에게 선사한 원초적인 두려움은 밤과 가장 닮은 색인 검정에도 고유한 성격을 부여했다. 바로, 죽음, 공포, 불행, 악(惡)이다.

 

Ⓒ Norm Architects - The Silo

 

검정에 대한 이런 연상은 대륙과 문화권을 아울러 거의 대부분이 공유하는 인식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검정은 어둠의 마술, 악신을 상징했다. 약 천 년 전의 일본에서는 검은 옷이 불운을 상징했고, 유럽 전역을 공포로 사로잡은 열성 전염병은 Black Death, 흑사병(黑死病)이라 불렸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슬픔을 표할 때도 우리는 검은 의복을 입는다. 죽음은 곧 영원한 잠, 또는 어둠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 Norm Architects - The Silo

 

죽음의 색, 검정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 세기 동안 종교계에서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한 사회의 규범, 윤리와 도덕적 기준을 결정할 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에서 말하는 우리는 엄숙하고 경건히 신을 두려워해야 했고, 이와 가장 어울리는 색은 검정이었다. 중세 시대의 사제들은 검은 의복을 입었는데, 이것은 겸허, 속죄, 그리고 세속적인 삶에서의 죽음을 의미하는 색이었기 때문이다.

 

Ⓒ Norm Architects - Shaker Trays

Ⓒ Form us with Love - Mitab-Button

 

말 그대로 ‘까만’ 피부를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말하는 ‘흑인(Black people)’의 피부는 실제로 검은색이 아니다. 단지 다른 인종에 비해 좀 더 짙은 갈색을 가졌을 뿐. 다른 많은 것들처럼 이 표현도 노예무역이 횡행하던 시절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노예 소유주들은 그들의 재산을 두고 검다는 뜻의 라틴어 niger에서 유래한 ‘Nigro’라 불렀다. 1865년 미국에서는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흑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종차별은 만연하다. 오늘날 Nigro는 흑인들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현재는 Black, 미국에서는 African American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었다.

 

Ⓒ Norm Architects - Table for Everyone

 

근현대 사회에서 블랙은 패션계를 주도한 디자이너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컬러가 됐다. 모던한 스타일의 여성 의복을 창시한 가브리엘 코코 샤넬은 “검정의 아름다움은 절대적이며 완벽하다.”고 말한 적이 있으며, 1960년대 영화배우 오드리 햅번이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에서 입고 나온 LBD(Little Black Dress)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이를 두고 “검정은 때에 상관 없이 언제든 입을 수 있고,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입을수 있다. ‘리틀 블랙 드레스’는 모든 여성의 옷장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 Normann Copenhagen - Jet

 

검정을 색(色, Color)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오래도록 이어져 왔다. 이는 검정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에 의해 구분된다. 검정은 빛을 흡수한다. 이 말은, 검은 물체는 모든 빛을 흡수하며 우리의 눈으로 반사되어 돌아오는 색이 없다는 의미다. 빛이 색을 만들어낸다고 보면, 검정은 빛의 부재일 뿐 색깔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검정을 색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검정 역시 색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견해는 이렇다. 검정이 빛을 흡수하지만, 빨강, 노랑, 파랑, 색의 삼원색을 섞으면 검정이 되므로 여러 개의 색깔을 섞은 검정 역시 하나의 색깔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검은색의 마법사라 불리던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검은색은 색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팔레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색은 검정이었다.

 

Ⓒ Norm Architects NAERVAER

 

Ⓒ Lucidi Pevere - Aplomb XL - Foscarini

 

불길하고 두렵지만 누군가의 슬픔을 위로하기도 하는 자애로운 컬러,
검정이다.

차주헌 기자
ixd.jhcha@gmail.com